나무들 비탈에 서다
「떨림」 中, 안개가 번져 멀리 감싸듯이 - 문태준
두번째낱말
2009. 10. 19. 00:19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랑'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이 순간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운 사람은 자꾸 만나게 되어 괴롭다는데, 어쨌든 사랑의 감정도 미움의 감정도 만남이 그 씨앗이다. 더더욱 사랑은 첫 만남이 씨앗이다. '맹귀우목'이라는 말이 있다. 바다에 사는 눈 먼 거북이가 우연히 바다에 뜬 나무를 만난다는 뜻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사랑이 찾아와도 우리는 그것이 사랑의 인연인 줄을 모른다.
인연을 맞을 때는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탁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마음도 달라진다. 같은 구름이지만 구름이 저녁 햇빛과 만나면 노을이 되고, 잘 흐르던 시내가 벼랑을 만나면 폭포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맡길까.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오늘밤에 나는 내 청춘의 사랑을 생각한다. 청춘이라는 말에는 봄비 소리가 난다. 토란잎을 두드리다 토란잎 위에서 몽글몽글 뒹굴다 그러곤 사라지는 푸른 빗방울의 소리가 난다. 내게도 푸른 빗방울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 나는 시골의 청춘이었고 그녀는 섬의 청춘이었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났다. 어느 시인의 비유대로 첫사랑을 알게 된 소녀의 브래지어같이 핀, 환한 목련나무 그늘에서 우리는 시집을 펼쳐 읽거나, 시위가 있는 날엔 매캐한 주점에서 어깨를 겯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는 사이 사랑이 찾아왔다. 산 그림자가 내리듯이. 안개가 번져 멀리 감싸듯이.
나는 중고 기타를 하나 얻어 어깨에 메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기타를 칠 줄은 몰랐다. 그냥 둘러메어보는 것이었다. 기타는 치장이었다. 기타를 배워 후일에 멋진 곡을 연주해보리라는 작은 소망은 있었다. 물론 그녀 앞이라면 더욱 좋겠다는 그런 소망으로.
그러나 나의 사랑은 천천히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사랑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좀 엉뚱하게도 예를 들면, 우리는 꽃의 개화를 볼 때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니체의 말 가운데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오랜 침묵이 있어야 빛나는 사랑의 언어도 탄생한다. 꽃의 개화를 통해 우리는 꽃피기 이전까지의 정적의 두께를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피어 있는 시간은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마치 자벌레가 몸을 오래 굽힌 후에 장차 펴는 것과 같이.
나는 소극적이었다. 첫 고백 비슷한 것을 하는 데에 1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 꽃집에 들렀으나 장미 한 다발을 차마 사지 못하고 하얀 백합 몇 송이를 샀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깐 그녀를 만나 등 뒤에 감추고 있던 꽃송이를 전달했고 쪽지를 건넸다. 청년 농사꾼이었던 나의 아버지가 이발관집 딸 나의 어머니에게 사촌 누이를 시켜 쪽지를 건네 사랑을 전달했듯이.
우산으로 비를 가렸으나 바짓단이 늪처럼 젖는 밤이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낭패였다. 나는 큰 담장을 넘어서는 넝쿨이 되는 기분이었다. 한쪽 담장을 타고 올라 건너편으로 넘어서려는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공중 같은 그런 것. 밤새 비를 맞으며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둠이 묽어지는 새벽이었다. 요즘에도 그런 어름한 사랑이 있을까? 암튼 나는 그때 처음 내 가슴 속으로 사람이 들어서는 소리를 들었다. 손을 잡을 수조차 없는, 오직 설렘이 내 마음을 경작하던.
사랑은 옆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주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은 여울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은 흐르되 내 안에 사랑이 흐르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응답이다. 소심한 내 사랑의 철학 같은 것이었다.
나는 장미 대신 하얀 백합을 건네준 그 첫 고백 이후 억지로 애쓰지는 않았다. 다시 일상처럼 나는 그녀의 옆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항상 곁에 있었다. 그녀는 내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경역이었다. 사랑이 진행되는 소리를 그녀도 나도 그냥 듣고만 있었다.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서는 편지를 썼다. 자두를 따고 포도를 따고 과일궤짝을 만드느라 못질을 하는 나의 하루에 대해 서툰 문장으로 말했다. 내가 산책 삼아 가본 저수지의 풍경과 그 저수지로 가기 위해 굴을 지나가는 때의 마음에 대해 첫 문장을 썼다. 그것은 세상에 처음 내어놓는 첫 문장이었다. 첫 감정을 나는 그녀에게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서 나는 내가 몹시도 궁금해하는 것을 묻지는 않았다. 그냥 나의 일상에 대해, 청과상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오늘 팔려나간 포도 한 상자의 가격에 대해, 오늘 읽은 시집에 대하여, 오늘 아침에 내가 훔친 따뜻한 온기의 계란에 대하여, 지저분하고 외로운 밤 고양이에 대하여 나는 썼다. 방학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서로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를 만나는 일이 밝은 편에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옆얼굴을, 일상을 들려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나 삶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는 말을 나는 그때 알았을까. 너무 손을 대면, 손 타면 안 된다는 그 말의 귀함을 나는 알았을까. 애써 성공하려 하지 말고 애써 실패를 초래하지도 말라는 그 말을 알았을까. 애써 헤어지려 하지 말고 애써 만나려 하지 말라는 그 말을 알았을까. 삶이나 사랑은 강과 같아서 다만 유유히 흐르는 것이다. 초봄의 새순이 무성해져 녹음을 만들고 그늘을 드리우는 것처럼. 그것이 사랑하는 시간의 변화이다. 나는 이 사실을 그때의 나에게 용납했다. 나는 기갈증 환자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와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지고 나올 때 나는 골목을 빠져나온 시간과 골목을 들어오지도 않은 시간에 대해 예민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유연했지만 속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내 심정을 조운의 시조 <석류>에 과연 빗댈 수 있을까. 내가 몹시 좋아하는 시조 <석류>는 이렇게 아프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군대 입대 기간은 역시 사랑하는 청춘들에게는 하나의 위기의 시간이다. 강원도 화천 산골로 가 군대생활을 할 때 그녀와의 편지는 몇 차례 이어지다 이내 끊어지고 말았다. 나도 그리 오래 편지가 오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측대로 과연 그러했다. 그녀는 그 사이 취직을 했다. 제대를 앞두고서야 그녀와의 편지왕래는 다시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서로를 다시 견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시 나의 성격 때문에 사랑은 느린 걸음이었다. 그녀가 취직한 회사로 나는 시골서 농사를 지어 거둔 한 상자의 포도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큰 용기였다. 서울행 무궁화호를 타고,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그녀의 회사 앞으로 가기까지 나는 내내 수없이 망설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용기는 수월한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녀의 직장 근처까지 가서 그녀가 일을 마치고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 외곽으로 짧은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지나갔다. 벚꽃이 지는 벤치와 왕버들이 있는 연못과 황금사원 같은 은행나무 아래서의 가을과 시장통 골목 소줏집 창가에 내리던 새벽 눈과 함께 계절이 지나갔다. 그러나 극적인 사건도 감정의 반전도 없었다. 그것은 사랑을 응시하는 시간이었다. 네 계절을 우리는 다시 지켜보았다. 나는 지금도 사랑을 시작하는 후배에게는 네 계절을 함께 지켜보라고 말한다. 사랑이 불꽃임을 나는 잘 몰랐던 것일까.
"달이 두 번 바뀔 동안 이웃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는, 그 이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라." 아메리카 인디언의 속담이라고 한다. 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비유를 이렇게 들어놓았다. 남의 말을, 험담을 접하면 마음이 동요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안에는 '원숭이가 산다'고 일러온 까닭이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나무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며 분주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일면 잔잔하던 수면에 큰 물결 잔물결이 일듯 우리의 마음자리도 그렇게 일어나고 흔들리는 파랑 같은 것이다. 사랑도 그런 파랑이 지속되는 시간이므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크게 다툰 후 나의 사랑은 헤어지자고 말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2층에서 커피를 마시다 그렇게 말했다.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는 처음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굶었다. 그것이 내가 이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녀와의 연락을 끊었다. 하루하루가 감옥 같은 날들이었다.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만나자고 했다. 그녀도 나도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다리미를 빌려 쓰고 있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그녀의 자취방으로 가서 다리미를 빌려왔고, 다림질을 끝내고 나면 다리미를 돌려주었다. 그녀가 다시 만나던 날 나에게 말했다. 빌려간 다리미를 돌려달라고. 다리미를 돌려달라고? 나는 웃었다. 그녀도 웃었다. 그런 사소한 말을 하자고 그녀는 나를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런 사소한 말을 듣자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러나 사랑은 그처럼 사소한 것이다. 사소한 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까이 갈 때에만 맡을 수 있는 라일락 향기처럼.
결국 나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 다섯 번의 이사를 했고, 두 명의 아이와 같이 살게 되었다. 수박을 사 들고 들어가던 저녁이 그곳에 살았고, 아이와 알몸으로 목욕하는 밤이 그곳에 살았고, 달그락거리는 밥상이 그곳에 살았고, 우는 아내가 그곳에 살았고, 꽃이 피어나는 맑은 아침이 그곳에 살았다.
그리고 거실에 앉은 오늘은 아주 평화롭다. 나는 드뷔시를 듣다가 저 멀리 틱낫한 스님이 명상할 때 듣는다는 노래를 듣는다. 가사가 촉촉하다. "장미꽃 봉오리가 핀 것을 보세요. 그리고 갈매기가 비상하는 것을 보세요.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보세요. 그리고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보세요. 해와 비로부터 헤어질 시간이 없습니다. 바람으로부터 헤어질 공간이 없습니다. 사물은 자연의 섭리를 따릅니다." 노래를 듣고 있는 내 마음에도 어느덧 음표 같은 시간이 내린다. 아이들은 다투도 다시 화해하며 그네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함께 대형할인점에 가서 쌀을 사고 향수를 사고 양말을 사고 방한모자를 하나 사왔고, 그녀는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고, 비어 있는 식탁은 조금씩 수런거린다.
바깥은 추운 계절이다. 춥지만 나는 이 계절이 춥지가 않다. 눈보라가, 얼음 같은 혹한의 날씨가 두렵지가 않다. 우리는 행복을 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톱밥난로 같은 온기를 전하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돌로 형상을 조각하는 아프리카의 한 조각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부유하다. 우리에겐 돌이 마치 과일과 같다. 당신이 과일의 속을 먹기 위해 과일을 연다면, 나는 돌을 연다."라고. 돌을 과일처럼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행복을 부르는 마음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점점 내가 좋아지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잔병과 상처 없이 자라나는 아이가 없듯이 우리는 좌절을 딛고 그것을 무릎 삼아서 다시 일어서 가되 부디 멀리 가야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사랑이란 그런 관심과 희망의 기록이다.